오늘 라마나 마하리쉬의 『 나는 누구인가 』를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책은 제가 그동안 읽어 온 책 중 가장 베스트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의 도서가 여러 권 있을 거예요. 다른 도서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는 그야말로 가르침의 정수가 담겨 있어요.
이 책을 번역한 이호준 님은 책을 우리말로 옮긴 뒤 바로 조계종 송광사로 출가를 하셨어요. 법명은 지산(志山)이시고요.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라마나에 대해서는 인도의 오쇼도 극찬을 하신 것으로 유명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오쇼가 아무나 그렇게 극찬을 하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대부분 그 반대의 경우로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시죠. 그런데 그런 분이 라마나에 대해서 극찬을 하셨다는 건 라마나가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셨을 테지요.
그럼, 난해하게 쓰인 나는 누구인가 첫 페이지 문장부터 전해드릴게요.
나는 누구입니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 · 청각 · 후각 · 미각 · 촉각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운동기관은 내가 아니다. 호흡 등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프라나(Prana) 등의 다섯가지 기氣는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순수한 앎(Awareness)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라마나는 인자하고 따스하기 그지없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문답을 하실 때에는 거침없이 대답을 해주셨어요. 물론 상대의 수준에 맞춰 대답을 해주셨어요. 어떤 이들은 지극히 바라만봐도 가슴의 문이 활짝 열려 내면의 상태를 느끼면서 지극한 평화를 느끼기도 했어요.
라마나 마하리쉬는 1879년 12월 30일 새벽 남인도 타밀 지방의 티루출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어요.
브라만계급 출신 가정의 둘째 아들로 그의 이름은 뱅카타라만이라는 이름이었어요. 라마나 마하리쉬는 지식인 중 한 명인 가나파티 무니가 나중에 그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신의 은총을 보고는 지은 이름이에요.
시바 신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 삼지창을 땅에 꽂아놓은 곳이 벵카타라만의 집 근처에 있었다고 해요.
열두 살 되던 해에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벵카타라만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돼요.
[아버지는 이렇게 침대 위에 누워 계신데 왜 사람들은 아버지가 떠나셨다고들 하는 걸까?]
궁금해서 어떤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자, 보렴! 이게 너의 아버지라면 일어나서 너를 따뜻이 맞아줘야 할 것 아니겠니?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 네 아버지가 이미 떠나셨기 때문이란다]
이 대답이 벵카타라만의 마음속에 그 육체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나아가서 인간의 육체는 그 인간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게 돼요.
놀랍지 않으신가요? 사람이 죽으면 그냥 죽었다가 되는 것인데, 라마나 그러니까 벵카타라만은 육체가 죽은 것인데 그것을 죽어 떠났다고 한다면 결국 그 육체 자체가 아버지가 아니라고 알게 된 거예요.
어릴 적 라마나는 레슬링 축구 수영 같은 운동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는데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어떤 짓을 해도 의식하지 못하곤 했었데요. 한 일화 중에
내 친구들은 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나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가량 나에 대해서 어떤 악의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내가 자는 것을 기다렸다가 자고 있는 내 몸을 자기들 멋대로 딴 데로 옮겨놓고는 나를 때리거나 얼굴에다 잔뜩 숯 칠을 한 다음, 다시 원래 자리에다 갖다 놓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다음날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기 전에는 그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내면에서 울리는 아루나찰라 라는 신비한 고동을 느끼고 있었는데, 소리가 아닌 묘한 진동과 같은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타루반나말라이라는 곳에 있는 산이름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후에 17살 집을 떠날 때 가게 될 행선지가 돼요.
그러면서 [페리아푸라 남]이라는 책으로 타밀 지방에 살던 63명의 성자들의 생애를 기록한 책을 읽게 되고 그에게 커다란 인상으로 남게 되는데,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벵가타라만의 생을 수행으로 인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어요.
그가 결정적으로 일생을 바꿔놓은 계기는 죽음에 대한 체험이었어요.
나는 전혀 아픈 데라곤 없었으며 그날도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었으며 나는 왜 그 공포가 생겼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곧 죽을 것 같다>라고만 느꼈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의사를 찾아봐야겠다 든가 윗사람 또는 친구들과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되겠다고 느꼈다.
<자, 죽음이 왔다,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육체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죽음의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자, 됐다. 이 육체는 죽었다. 이 육체는 화장터로 옮겨져 장작더미 위에서 재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육체가 죽는다고 내가 죽는 것일까? 이 육체가 과연 나일까? 그러나 나는 이때, 육체와는 별개의 강력한 내 존재의 힘을 느꼈으며 내면에서 울리는 <나>의 소리를 느꼈다.
나는 이 육체를 초월한 영靈이다. 육체는 죽어도 육체를 초월한 이 영은 죽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 불명의 영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어린 라마나는 육체와 연관된 의식적인 모든 행위는 그 <나>에 집중하게 돼요. 그리고 그 후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되죠.
그리고는 영혼이 육체와의 연결에서 벗어나 닻을 내릴 새로운 정박지를 찾게 돼요. 결국 학교와 친구들 모든것에 흥미를 느낀 벵가타라만은 형의 등록금중 일부를 들고 어릴적부터 내면에서 계속 들려오던 고동소리인 아루나찰라로 떠나게 되요.
이 산에는 시바를 모신 사원이 있었어요. 고생 끝에 그곳에 도착한 벵가타라만은 자신의 여행이 끝났음을 알게 돼요. 아루나찰라 신을 상징하는 링가를 껴안는 순간 지복에 가득찬 결합속에 있었기에 그는 더이상 이 생에서 바랄것이 없었어요.
그는 자신의 수중에 있던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입던 옷도 찢어 허리에 걸치고는 간단한 옷만을 만들어 입고 나머지는 버리게 되요. 라마나의 사진을 보면 옷을 거의 입지 않고 중요부위만 가린 채 있어요. 이때부터 그런 모습이 시작된 거죠.
그리고는 사원 한쪽 구석에 앉아 삼매에 들었는데, 개구쟁이 어린애들이 시끄럽게 굴자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게 되고 그곳은 개미, 모기, 파리, 지네 온갖 해충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는데, 그 지하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삼매에 몰입하게 돼요.
벌레들이 그의 몸에 다가와서 허벅지와 발을 물어뜯어 상처에 피가 흐르고 고름과 한데 엉겨서 뒤범벅이 되어 흘러내렸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삼매에 들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누군가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삼매에 들어있는 입에 음식을 흘려 넣기도 하면서 두 달가량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게 돼요.
그다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중 가나파티 무니라는 지식인이 있었는데, 10년 이상 수행하여도 내적 변화가 없어 20대 청년인 벵카타라만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타파스의 본질을 알고 싶다고 묻게 돼요.
그는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나>라는 생각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바라보면 마음은 그것 안으로 흡수됩니다. 이것이 타파스입니다. 만트라를 반복할 때에도 그 만트라의 소리가 일어나는 근원을 바라보면 마음은 그것 안으로 흡수됩니다. 이것이 타파스입니다
이를 듣고 가나파티 무니는 그에게 '브하가반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 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게 되죠. 그 뜻은 <전능한 신 위대한 성취자>란 의미예요. 이때부터 벵카타라만은 <라마나 마하리쉬>로 불리게 됩니다.
그는 인간들이 진아를 모르는 이유는 그릇된 동일시 때문이라며,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두가지 방법에 대해 알려줘요. 그 하나는 자아탐구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헌신의 길이예요.
라마나는 자아탐구가 더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각이 일어날때마다 자신에게 이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이 생각이 사라질때까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라는거예요.
라마나는 가끔 부엌으로 가서 일을 거들곤 하였는데 손은 지금 일을 하고 있으나 내면의 전혀 움직이지 않는것 그것이(That)이 바로 여러분이니 그것을 깨달으면 무슨일이든 결코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라고 말해 주곤 했어요.
이 책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는 라마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와 수행자들과의 문답으로 엮여 있어요.
너무 깊은 내용들이 많아 담기는 힘들겠지만, 좋은 문장 몇 개를 적어볼게요~.
각자의 운명은 자신의 카르마에 따라 정해져 있다.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일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길은 침묵하는 길이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며 보는 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보이는가? 오직 하나의 의식 안이 있을 뿐인데 그것이 <나라는 생각>으로 나타나서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눈을 통해 스스로를 투사하여 주위의 사물을 보는 것이다.
진정한 헌신이란 신과의 모든 이원적 관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 남아 있는 것 자기 일생의 모든 책임을 신에게 맡겨 버리는 방법.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를 일으키는 나는 없으며 오직 신만이 실재한다는 끊임없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___바가바드 기타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었죠___)
어떤 생각이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바로 그 순간 그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신안에 고정시켜야만 한다. (너무 놀랍지 않으신지요?)
무조건적 복종을 하게 되면 질문하는 자가 사라질 것이다.
가장 좋은 숭배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형태 없는 실체를 숭배하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숭배에 익숙하지 못할 때는 형상을 숭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형태 없는 실체에 대한 숭배는 에고의 형태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에고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숭배는 사실은 모두 형상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신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이 강하면 그대가 설사 원하지 않더라도 깨달음이 그대에게 나타날 것이다. 마음이 그 헌신 속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나프탈렌은 오래 두면 다 날아가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음이 바로 나푸탈렌과 같다. 사람이 진아 속에 녹아 버려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상태가 바로 깨달음이다.
마음의 근원을 찾든지 아니면 절대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라. 꾸준한 인내 없이는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
구도자가 따라야 할 보편적인 행동의 규율은 적당한 음식, 적당한 수면, 적당한 말이다.
마음이 밖으로 향하려 할 때마다 거두어들여 진아에 고정시키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굳이 명상을 한다거나 주문을 외우는 등의 방법을 동원할 필요 없이 진아를 망각한 채로 다른 대상을 생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대가 외부의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돌이켜 진아에 고정시키면 진아만이 남게 된다.
동시론
마음이 먼저 일어나고 다시 그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낸 대상을 본다. 그대들이 보는 모든 것은 보는 자에게 달려 있다. 보는 자가 없으면 보이는 대상도 없다.
현상계란 바로 자기의 환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고한 아트만이 환하게 빛나는 속에서는 모든 대상이 사라진다.
육체는 지각능력이 없다. 단지 생각이 그렇다고 그런 것이며 에고가 순수의식과 중간역할을 하고 있다.
육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경험하게 될 것인지는 육체가 존재하게 된 순간 이미 결정되어 있다.
피와 살로 이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의 실 위에 다른 생각들이 꿰어져 있다. 따라서 관심을 내부로 돌려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게 되면 모든 생각(나라는 생각을 포함한)이 사라지고 진아가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실로 엄청난 가르침들을 전하고 있어요. 나라는 생각자체는 동일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나라는 생각이 그 생각의 주인처럼 나타나서 내가 생각하거나 믿거나 내가 원하거나 내가 행위하는 식이 되지만, 사실은 동일시할 대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생각은 없다는 가르침이 핵심이에요.
그 나라는 생각이 마치 실체인 것처럼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끊임없는 동일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 동일시를 끊어내는 방법이 자아탐구이고 계속해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생각이 일어날때마다 물어서 마음과 나라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묻게 되면, 결국은 개체성에 대한 인식도 없고 생각하는 자도 행위자도 없다는 것이에요. 사라진 자리에 진아가 나타나는데 그 진아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어렵지요? 수행하시는 분들이시라면 찾아내실 테지요. 어쩜 이미 찾아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마지막으로 라마나 마하리쉬가 진아의 위치에 대해 알려준 부분을 말씀드리면서 오늘 글을 마칠게요.
라마나는 진아와 동일한 의미로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진아는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아무런 형태도 위치도 없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가르쳤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육체가 나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있어서의 특정부위 즉, 가슴의 중심으로부터 3.75센티미터 오른쪽에 이 중심이 위치하며 모든 영적 체험의 중심이 이곳이라고 가르쳤어요.
오늘은 인도의 영적스승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세상 모든분들이 깨달음속에 거하심을 알아채는 지금이 되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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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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